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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광진교에서



광진교에서 / 최승환


에 취한 듯
대관령에서 미끄러지던 봄바람이 생각나던 날, 빈둥거리던 문바람 박차고 무작정 걷던 광진교에는 산책하는 바람이 있었다
철쭉이 은빛 강물처럼 인사한다 바람에 밀려 강 아래 둔치를 지나친다 아쉬운 듯한 마음을 나무가 여운처럼 반긴다
치킨 배달 소년이 잠시 멈칫하는 허공에 주소가 없다 바람처럼 동해에서 주문이라도 한 것일까
강물은 교각에 부딪히고 소리는 자동차에 묻힌다 강변에 매달린 미루나무 이파리가 한쪽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제5 전망대를 쳐다본다 마주침의 쓸쓸함이 여유롭고 나물을 뜯는 손길은 한가한 맛이다
바람은 여전히 물결을 밀고 있다
해발 800m에서 약속한 바람이 팔당 댐을 지나 아이리스 영화를 촬영해도 좋을 8번가로 흐른다 사람이 아름다운 전시장에서 아찔한 강물 바닥을 향해 그리미전 수채화를 여전히 그리고 있다 이웃집에서는 공연을 마친 펭귄 족들이 음악을 유리 사진에 담고 있다 8번가를 빠져나가는 계단은 오르고 내리고 여전히 제로섬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누군가 생명의 전화를 기다리는 곳에서 바람을 꺾어 강물에 띄우고 싶다 단풍나무와 초록 나무가 악수하는 뮤직벤치에 앉아 아직은 꽃피는 광진교에서
노을을 기다리는 계절은
연인이 손을 건네는 그 바람, 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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