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와 이모티비즘
가치판단의 참과 사실판단의 참을 연결하는 것은 오류이다. '인간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규범윤리학자의 근거는 착하게 사는 것이 결국 행복하게 잘 살더라라는 사실판단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규범윤리학에서는 윤리가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사실판단을 제시하더라도 가치판단의 당위인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증명은 불가능 하다. 두 부분은 절적으로 다른 존재의 층위이기 때문이다. 규범윤리학은 과학적 학문으로 증명불가능하기 때문에 학문으로 성립할 수 없다.
현대의 대표적 메타윤리학은 이모티비즘(emotivism)에서는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의 도덕판단은' 아 슬프다' '기쁘다'와 같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을 할 뿐이며 사실판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헤어는 도덕판단도 참, 거짓으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윤리학도 학문으로 성립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인문 윤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문답 (0) | 2015.07.24 |
---|---|
스피노자와 메타윤리학 (0) | 2015.06.24 |
규범윤리학과 메타윤리학의 관점 (0) | 2015.06.24 |
도덕법칙에서 목적론과 법칙론 (0) | 2015.06.24 |
데카르트의 문제 제기 (0) | 2015.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