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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파도가 바다에 빠진 날

파도가 바다에 빠진 날

한 아이가 발바닥을 움푹 팬 곳에 대리석 계단의 모서리를 밟는다
둘째 아이는 손바닥 오므려 바람을 담다가 작은 손에 꿈이 모자란 채 손가락 사이로 삐져 나간다
셋째 아이는 귀를 기울여 옆 동네 옆으로 지나가는 이야기를 듣고 옆으로 흘려보낸다
넷째 아이는 입을 오므려 숨을 내 뿜으며 뱃속의 기별을 토해내고 킁킁거리며 밥을 찾는다
다섯째 아이는 코를 훌쩍거려 내밀한 음모를 숨기려다 지나던 참새가 똥을 지려 이마에서 흐르는 향기에 취해 잠시 쉬는 중이다
여섯째 아이는 무릎을 쪼그려 뜀뛰기를 하면서 건강을 만드는지 늦은 잠으로 시간을 훔친 벌을 받는지 모른 채 헐떡거리고 있다
일곱째 아이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굴러가는 굴렁쇠 속도를 맞춰 긴 터널을 준비하는 중이다
여덟째 아이는 눈을 크게 뜨는 연습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꿈꾸며 연신 침을 흘리고 있다
아홉째 날에는 하루를 하루가 먹고 마시고 처바르고 있다
열 번째 세월을 바꾸는 계절과 아이와 하루가 점점 가까워지는 사이, 점점 멀어지는 아이들이 질주하는 꿈을 꾸던 철 지난 시인과 광인이 머리카락의 애무를 깨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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