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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상 - 돗자리 매던 밤

돗자리 매던 밤.최승환

보름달이 그리운 그날 밤이었다
문 밖에는 별빛이 창문을 간신히 넘고
문풍지가 칼바람에 덜거덕거리고
방안에는 촛불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부들자리를 부들부들 매고
엄마는 곶감을 밤새 잉 잉 잉태하고
동생들은 그 자리에 똥칠하던
배고팠던 시절을 생각하며 나는
식은 고구마를 지나온 바닥에 짓밟아 버렸다
하얀 얼굴을 등잔불 아래 가두고
요란한 손짓만 깊숙이 내려앉는
침묵의 밤은 깊어만 갔었다
고달픈 삶이 우물에 담기 듯
고구마 푸대와 옥수수 자루를
끌어앉고 잠을 청해야 했던 것을
서로가 눈빛으로 묵인했던 그 시절
자리틀 돌 넘어가는 소리와
방안을 맴도는 지독한 담배연기가
다락다락 왕골자리를 만들던
지난 추억이 돗자리에 내려앉고
제사상 곶감의 탄성에 혀를 묻는다
차오른 보름달이 풀벌레 소리에 묻히고
옅은 바람이 닿는 문고리에
이 밤은 또 무슨 사연을 담는지
연민 같은 시간을 소환하며 나는
딱 한 방울 눈물만 빛바랜 돗자리에 묻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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