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 기출제시문
◦ 사단과 칠정의 관계는 곧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관계와 같다 본연지성은 기질을 겸하지 않은 것이지만 기질지성은 오히려 본연지성을 겸한다
◦ 대개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해로움이 없게 하여 그 생을 즐기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만일 고루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그릇된 것을 그대로 지키면서 시일만 보내거나 한가지 폐단도 혁신하지 못하고 한가지 정령도 제대로 거행하지. 못하면서 다만 아침저녁으로 간곡하게 부르짖기를 '나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할 뿐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성심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백성들은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지극히 신명하니 어찌 말로서 속일 수 있겠습니까?
◦ 둥근 그릇은 네모난 그릇일 수 없기 때문에 그릇은 그 형상에 의해 제한되고, 둥근 그릇에 담긴 물은 네모난 그릇에 담긴 물과 같기 때문에 물은 모든 그릇을 관통하는 것이다.=通氣局論)
◦ 이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다. 그러므로 이는 작용하는 바가 없고 기는 작용하는 바가 있다. 따라서 기는 발동하고 이는 기에 탄다.=氣發理乘論
◦ 이과 기는 두 가지 물건도 아니고 한 가지 물건도 아니다. 한 가지 물건이 아니므로 하나이면서 둘이요, 두 가지 물건이 아니므로 둘이면서 하나이다. = 이기지묘(理氣之妙)
◦ 이는 보편적인 것, 기는 특수한 것으로 보았다.
◦ 기가 발하면 이가 기를 탄다는 명제는 옳지만, 이가 발하면 기가 이를 따른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기발이승일도설
◦ 물은 그릇 모양에 따라 모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지만 모두 물이며, 허공은 병의 크기에 따라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지만 모두 공기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물과 공기는 이이고, 물과 공기의 다른 모습은 기이다.
◦ 이기가 분리되지 않은 이기의 일원처. 즉 이기지묘는 보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 이와 기가 분리되지 않으므로 기가 흐리면 이도 흐리게 보이고 기가 맑으면 이도 맑게 보인다. 이에 청탁이 있는 것은 기의 청탁이 반영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가 흐려질까 염려할 것이 아니라 흐린 기질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기는 원래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물에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이는 형태가 없고 기는 형태가 있으므로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하는 것이며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므로 기가 발하면 이가 그 위에 타게 된다.
◦ 물이 담겨 있는 그릇에 있어. 물이 그릇을 떠날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이와 기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으며 그릇이 움직일 때 물이 움직이는 것은 기가 발할 때 이가 거기에 타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기는 서로 발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물이 먼저 움직이고 거기에 그릇이 따라서 움직이는 경우도 있고 그릇이 먼저 움직이고 물이 그릇에 움직임에 따라 나중에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는 결코 타당한 견해가 아니다.
◦ 학문에 입문한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즉 성인이 될 것을 다짐해야 하며 그렇게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물러서는 마음을 터럭만큼이라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름 바탕으로 궁리와 거경에 힘써야 성인의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다.
◦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순수한 본성은 하늘에 떠 있는 달과 같다 비록 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하늘에 있는 달만 달이라고 하고 물속에 비친 달은 달이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해는 항상 본래 모습 그래도 있지만 구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맑을 수도 있고 흐릴 수도 있다. 흐린가 맑은 가는 구름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리고 흐렸다가도 구름이 걷히면 해의 본 모습이 그래도 드러나지만 거기에는 조금이라도 더하거나 뺀 것이 없다. -기대승-
◦ 정은 하나이다. 그럼에도 사단이다 칠정이다 말하는 것은 오로지 이만을 말할 때와 기를 겸하여 말할 때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단은 칠정을 겸할 수 없으나 칠정은 사단을 겸할 수 있다. 사단은 전체를 아우르는 점에서는 칠정만 못하고 칠정은 순수한 점에서는 사단만 못하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 성은 하늘의 진실한 이이자 마음의 본체이다. 사람이 그 본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사사로움과 사특함이 가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으로주재하여사특함을제거하면본체가온전할수있다. 경은노력의요체이며성을노력을거두어들이는바탕이므로경을통하여성에이를수있는것이다.
◦ 천리는 함이 없는 것으로 반드시 기의 기틀을 타고서 움직인다. 기가 움직이지 않는데 이가 움직이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성이 기를 타고 움직여 정이 된다.
◦ 이치와 기운은 원래부터 서로 떠나지 못합니다. 만일 떠나거나 합치는 것이 있으면 움직이거나 고요함도 끝이 있고 음과 양도 처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치란 태극이고 기운이란 음양인데 이제 태극과 음양이 서로 움직인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태극과 음양이 서로 움직일 수 없으면 이치와 기운이 서로 발동한다는 것이 어찌 오류가 아니겠습니까?
◦ 이와 기는 원래 떨어짐이 없으니 일물과도 같다. 다른 바는 이는 무형이요 기는 유형이며 이는 무위요 기는 유위라는 점이다. 무형무위로서 유형유위의 주재가 되는 것이 이요. 유형유위로서 무형무위의 기재가 되는 것이 기이다.
◦ 이와 기는 서로 의존하여 보완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화된다.
◦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꼭 그렇게 발해야만 되는 근거가 없게 된다.
◦ 무릇 사람의 감정[情]은 마땅히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며,상(喪)을 당해서는 슬퍼하며, 가까운 사람을 보고서는 사랑하고, 어진 사람을 보고서는 그와 똑같아지기를 바라니, 이것들이 희(喜) ·애(哀) · 애(愛)·욕(欲)의 네 가지 감정입니다. 바로 인(仁)의 실마리[端]인 것입니다.
◦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은 각각의 성이 아니다. 이과 기를 합하여 말하면 기질지성이고, 단지 그 이만을 가리켜 말하면 본연지성이다. 따라서 기질지성은 본연지성을 겸한다.
◦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하고 이가 그것을 타는 것이다.
◦ 천지의 변화가 이나 기 홀로 이루어짐이 없듯이 내 마음도 이발(理發), 기발(氣發)의 구분이 없다.
◦ 인간을 포함한 사물의 특성이 제각기 다른 것은 기(氣)의 국한성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특성 속에 본체로서의 이(理)가 내재되어 있다. 이것을 이통기국(理通氣局)이라 한다.
◦ 초학자는 예(禮)와 비례(非禮)의 구분이 어려우니 이(理)를 탐구해야 하고, 이미 알아낸 것에 대해서는 힘써 행해야한다. …(중략)… 고요히 앉아 마음을 가다듬어 어지러운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하면 이가 기를 탄 것이다.
◦ 인간으로서 내가 갖는 성(性)은 너와 나의 구별이 없지 만 나의 모습과 너의 모습은 현실적으로 다르다. 성은 이(理)이고 모습은 기(氣)이다. 그래서 이는 보편성을 갖고 기는 특수성을 갖는다.
◦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하고 이가 그것을 타는 것이다.
◦ 천지의 변화가 이나 기 홀로 이루어짐이 없듯이 내 마음도 이발(理發), 기발(氣發)의 구분이 없다.
◦ 깊은 물 속의 물고기에서 높은 하늘의 새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의 성품이 모두 같으니, 나의 사랑은 산과 골짜기의 세상 끝까지 미친다.
◦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본 뒤에야 측은한 마음이 나오게 된다. 이것을 보고서 측은해 하는 것은 기(氣)이니 이것이 이른바 기가 발한다 〔發〕 는 것이요, 측은한 마음의 근본은 인(仁)이니 이것이 이른바 이(鱇)가 탄다〔乘〕 는 것이다.
◦ (理)가 기(氣)를 타고 운행하는 것은 사람이 말을 타고 출입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은 말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고 말은 사람이 아니면 길을 잃으며 사람과 말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이 비유의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사단과 칠정 모두 기가 발하고 이가 탄 것이므로 사단은 이가 발하고 기가 이를 따른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못하다. 이는 발하는 까닭이고 발하는 것은 기이다.
◦ 발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는 원인[所以]은 이이다. 이른바 ‘기가 발함에 이가 탄다.’는 것은 옳다. 다만 칠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단 역시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이다.
◦ 이와 기는 떨어지지 않아 하나의 물건[一物]과 같다. 이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니, 이는 통(通)하고 기는 국한 [局]된다.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有爲)이니 기가 발하면 이가 탄다.
◦ 본연지성은 기질지성을 겸하지 않지만 기질지성은 본연지성을 겸한 것이다. 성(性)에는 인의예지신 다섯 가지가 있을 뿐이고, 정(情)에는 희로애구애오욕 일곱 가지가 있을 뿐이다. 사단은 선(善)한 정의 별칭일 뿐이다.
◦ 사단(四端)은 단지 이(理)만 말한 것이고 칠정(七情)은 이와 기(氣)를 합하여 말한 것이니, 두 갈래의 정(情)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을 두 갈래로 보는 것과 이기가 서로 발(發)한다는 설은 주의하여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 정에 대해 ‘사단이다, 칠정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오직 이만을 말할 때와 기를 겸하여 말할 때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단은 칠정을 겸할 수 없으나 칠정은 사단을 겸할 수 있다
◦ 먼저 밖으로부터 감응[感]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서 안에서 저절로 이(理)가 발(發)한 것을 측은지심으로 삼는다면, 이것은 아버지가 없이도 효가 발하는 것이니 어찌 이것이 사람의 참된 정(情)이겠습니까?
◦ 인은 마음의 덕(德)이자 인간 본연의 성(性)이며, 하늘의 이치[理]이다. 편벽된 기질을 교정하고[矯] 올바른 기운을 복돋움으로써[養] 본연을 회복할 수 있다.
◦ 사단은 칠정의 선한 측면 〔善一邊〕 이고 칠정은 사단을 합쳐 말한 것이니, 칠정의 한 측면과 칠정 전체를 어찌 둘로 나눠 대치시킬 수 있겠는가? 칠정 밖에 다른 정(情)은 없다.
◦ 측은지심은 애(愛)에 속(屬)하고, 수오지심은 오(괒)에 속하고, 사양[恭敬]지심은 구(懼)에 속하고, 시비지심은 마땅히 희노(喜怒)해야 할 여부(與否)를 아는 정(情)에 속한다.
◦ 어떤 일을 접해서 희로애락하는 것은 정(情)이다. 화내야 할 때 화내는 것은 정의 선한 측면이고, 화내지 말아야 할 때 화내는 것은 정의 불선(不善)한 측면이다. 선한 측면의 정은 청명한 기(氣)를 타고 천리에 따라 곧장 나오는데, 그것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실마리인 사단이다.
◦ 기(氣)의 본연(本然)은 맑고 깨끗하지만 천만 가지로 차별이 생겨 온갖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그 본연을 유지하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는 만물 어디에서나 본연 그대로 천리이지만, 기에 담겨 있으므로 기가 맑으면 [淸]천리가 그대로 드러나고, 기가 흐리면 [濁] `인욕으로 드러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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