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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아침놀

아침놀 _ 최승환

밤새 등대는 소리 없는 기침을 했다

흙을 집어 삼킨 듯
맥박을 숨긴 바다는 새벽을 기다렸다
언뜻 물방울 비치고
흐릿한 안개는 어둠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몸을 섞는
아주 지루한 시간이 소리를 먹었다

배 한 척 스르륵
젖은 눈을 굴리는 듯
거품은 고양이처럼 힐끔거린다
바위를 뚫는 물방울이 그러하듯이
고깃배에는 여전히 느린 시간이 흐른다

어스름한 백사장 기지개 켜고
전기줄 참새는 고독한 바다와 수평선을 그리며 야무진 부리로 느릿한 시간을 쪼아 됐다
기다림과 적막 그 틈새로
적(滴)은 눈을 숨긴 채 내밀하게 오고 있었다

언뜻
소 혓바닥을 닮은 붉은 덩어리가 고개를 내민다
불쑥
솟아오른다
놀란 갈매기가
혓바닥으로 들어가고
아름다운 핏자국이 바다에 얼룩진다
출렁이는 노을 위로
고깃배가 그물치며 한가로이 노닌다
노을 빛은 산란하고도 그윽하게 춤춘다
적적한 등대와 고운 모래 사이로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면
파도의 자락자락 가냘픈 심장소리 살아난다

물결,
그 등줄기로 노을이 꺼져가는 시간
고깃배가 고동치면
아침 햇살은 점점 커져간다
잔잔하게 꿈틀거리는
물방울의 겹침, 떨림
파도가 터널로 밀려오다 멈칫
하얀 포말이 긴장하는 매혹적인 드라마

아침놀,
은은한 숨결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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