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육교에서
/ 최승환
계단을 오르는
한 발 두 발
예약된 상처의 흔적
가로지르는 통로
마주치는 얼굴조차 없어
방황하는 시선
아래로
떠도는 바람이 던지는 시린 입김
기다림에 기댄 승강장의 또 다른 바람
얼굴없는 기관으로 가로막혀
통로 없는
대지를 양분하는 막힌 장치
태고 부터의 분리가 의례처럼 웃고
흐름을 끊는 기계음
그 사이로
가로지르고 싶은 욕망
멈춘다
미지의 선로 그 향연 그리고 진동
괴물처럼 육교의 난간을 휘감고
가쁜 호흡과 뛰는 맥박으로 미끄러져 오는 열차
잠시 숨 고르는 사이
바라보던 군중
힘겨운 오르내림
던져지고 버려져 모든 것이 무너지는
문도 창문도 없는 시간의 반복
홀로 서기의 사건이 발생하는 플랫폼
무한한 타자가 흐른다
간이역,
선명한 선로의 끝 자락에는
은폐된
이성, 나누고 합치려는 도구
전쟁의 포화로 찢기고, 이별의 잔해
탈주한다
욕망의 잉태, 건설의 착취를 고스란히 담아
헐벗은 잉여
떠도는 희망은 미래
전기줄에 매달린 가시들의 울음
그리고…선로의 틈
부끄러운 열차는 떠나고
남겨진 시선도 따라가고
상처,
치유되지 않는 기억은
계단의 틈새 사이로 미끄러지는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