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을 하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이다"
사랑이란 '인간 상호간의 일치와 타인과의 융합'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성장에 적극적으로 관계하는 일'이며, '어떤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세계와의 관계를 결정짓는 태도이자 성격의 방향'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동물이나 꽃을 사랑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꽃에 물을 주는 것을 잊 어버린 사람을 본다면 우리는 그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이러한 적극적 관심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다. 시장형 성격의 사람은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한 교환의 의미로만 주어야 한다고 본다. 비생산적인 성격의 사람은 주는 것을 가난해지는 것으로 생각해서 대부분은 주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사람은 환희의 경험보다 고통을 감수하는 희생이라는 의미에서 사랑을 주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 그들은 모두 사랑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생산적인 성격의 사람은 사랑을 주는 것이 잠재적인 능력의 최고 표현이며 생산적인 활동 이라고 본다. 이것은 상대방의 생명과 성장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자발적으로 책임지는 것이며, 착취 없이 존경하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게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당신을 통해 세계를 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까지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주는 것'에 대한 흔한 오해는 '주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 빼앗기는 것, 또는 희생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산적인 성격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준다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준다는 것은 잠재력의 가장 높은 표현이다. 준다는 행동 바로 그것에서 자신의 강함과, 자신의 부와, 자신의 역량을 경험한다. 이렇게 과시된 생명력과 잠재력의 경험은 스스로를 기쁨으로 충만케 한다. 그는 그 자신이 충만되어 있고 소비하며 살아 있다는 것 때문에 기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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