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도덕적 덕을 통해 얻는 행복은 일시적인 행복에 불과하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궁극 목적으로 존재하는 신의 은총을 받아야 하며 종교적 덕을 실천해야 한다.
◦ 신앙과 이성은 모두 신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모순되지 않는다. 따라서 신학과 철학은 서로 다른 진리에 도달 할 수 없다. 그러나 철학은 창조된 사물에서 출발하여 신에게 이르지만, 신학은 신에서 출발한다. 또한 이성에 기반을 둔 행복은 일시적 행복에 불과하다 영원한 행복은 신의 은총과 종교적 덕의 실천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다.
◦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계층적 질서를 이루며 보다 높은 단계의 존재를 위해 존재한다. 덜 귀한 것은 더 귀한 것을 위해 존재하며 그리하여 모든 존재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 인간은 신의 진리에 도달하여 영혼의 평화를 얻을 때까지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신의 빛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신의 타고난 능력만으로는 신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
◦ 우리는 인식을 갖지 못하는 사물들. 즉 자연적 물체들이 목적 때문에 작용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인식을 갖지 못하는 사물들을 인식하며 깨닫는 어떤 존재에 의해 지휘되지 않으면 목적을 지향할 수 없다. 이는 마치 화살이 사수에 의해 지휘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자연적 사물들이 목적을 향하여 질서 지어주는 어떤 이성적 존재가 있다. 이런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이성으로 파악 할 수 없는 어떤 목적을 향하도록 정해졌다. 그것은 ‘이사야서’의 하느님이시여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당신이 준비하신 것을 당신 없이는 눈이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의도나 행위를 주어진 목적에 따르도록 해야 하므로 인간은 목적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 목적은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
◦ 행복을 인간이 추구할 만한 선으로 파악한다.
◦ 선택의 자유가 있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통제 능력이 있는 인간은 그의 최종 목적이 부귀영화나 명에, 권세, 성(性)이나 문화 도는 어떤 다른 개인적인 성취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되지 않은 선(善)’인 신(神)만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요구들을 완전히 채워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 행복의 진정한 대상은 신이다.
◦ 세상 행복의 추구는 가능하다 인간의 본성이 거기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행복인 신에 대한 직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순수 자연적인 기능들을 훨씬 넘어서야 한다. 참되고 영원한 행복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로서, 도덕적인 덕을 넘어 오직 은총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
◦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선은 인간이 신과 접촉하고 인간을 위한 신의 계획을 완성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인간 자신의 완전성이다. 인간의 완전한 행복은 오직 내세에 신과 하나가 되고 그의 무한한 선을 향유할 때에만 가능하다.
◦ 신과 관련해서 이성이 스스로 깨칠 수 있는 진리들도 존재한다. 신이 존재하며 오직 신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진리가 그것이다. 지혜로운 신은 원래 이성에 의해서도 인식 될 수 있는 신앙적 진리를 초자연적 진리와 마찬가지로 계시의 내용으로 보았다.
◦ 모든 것들은 완성을 향한 욕구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최종 목적은 결국 자신의 완전한 선, 즉 자신을 충족시키는 선이라고 할 수 있다….(중략)…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창조되지 않은 선, 즉 신이다. 신은 무한한 선이므로 오직 신만이 우리의 의지를 충만하게 채울 수 있다.
◦ 자연의 사물들이 목적을 위해 작용하는 것은 우연에 의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물들에 어떤 목적을 부여 하는 지성적 존재, 즉 인격신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신을 통해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것이다.
◦ 철학과 신학은 대립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 관계에 있다. 이성과 의지는 함께 완전한 행복, 즉 선의 본질인 신에의 합일이라는 목표를 추구한다.
◦ 지복(至福)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연적 덕(德)만으로는 불완전하고 신학적 덕이 있어야 합니다.
◦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또한 자연법이란 인간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법이며, 인간법은 자연법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 우리는 믿기 위해서 이해하는 것이지, 이해하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도 신에 대한 믿음, 즉 신앙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신의 존재는 다섯 가지 방식으로 증명될 수 있다. 그것을 간단히 표현하면 운동에 의한 증명, 원인에 의한 증명, 필연적 존재에 의한 증명, 완전한 존재에 의한 증명, 우주 질서의 창조자로서 지적인 존재에 의한 증명으로 불릴 수 있다.
◦ 신의 존재는 다섯 가지 방식으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철학으로 신학적 진리를 명확하게 할 수 있지만 철학만으로는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 신은 신앙의 대상이며, 신의 존재는 이성적 추론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 보편은 신 속에, 개체 속에, 인간 정신 속에 있다.
◦ 신은 피조물들에게서 발견되는 모든 행위와 개념들의 지배자이다. 신의 지혜는 우주를 창조하는 원리이며, 모든 것들이 자신의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도록 하는 법칙을 의미하기도 한다.
◦ 신의 존재는 이성적으로 논증될 수 있고, 초월적 진리는 계시와 신앙을 통해 알려진다. 인간의 행복은 최고선인 신과 하나 됨에 있다. 보편은 개체 내에 존재한다.
◦ 신앙은 신과 관계하고 자연적 이성은 세계의 현실과 관계한다. 신앙과 이성은 모두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는 믿음, 소망,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 움직이는 모든 것은 항상 다른 것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 그러나 운동의 원인에 대한 소급이 무한히 진행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결국 그 자신은 움직여지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는 최초의 원인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성적 논증을 통해 이 최초의 원인을 신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철학은 신학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 계시된 진리와 철학의 진리는 모순되지 않는다. 신이 존재 한다는 진리는 이성적 논증을 통해 보다 뚜렷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의 진리는 부분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전체적이고 완전한 계시된 진리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우리는 믿기 위해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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