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사상

쇼펜하우어 윤리사상

gazisys 2015. 7. 19. 13:38

❐삶은 맹목적 의지이다.

◦목적없는 의지로 인해 생긴 욕구가 모두 충족되는 것은 아니므로 인간은 고통을 겪는다.

◦삶은 맹목적 의지일 뿐이고 세계는 근원적이며 악하며, 인생은 결국 고통이다.

◦의지는 끝없는 욕망을 갖게 하며 본래 맹목적인 것이다.

◦쾌락은 생의 실체이자 진정한 실재인 이러한 욕망의 정지에 불과한 것이다. 욕망 내지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욕구가 생의 고뇌를 산출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뇌로부터의 구원은 완전한 금욕적 부정 즉 해탈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생에의 맹목적 의지가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동물 역시 이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동물에 대해서도 동정심을 베풀어야 한다. 

◦세상이 무엇이던가.  끝없는 의지의 표상이 아니었던가? 살면서 무언가를 바라는 이상 적어도 살아가길 바라는 이상. 의지에서 자유로울 자 있을 수 없다. 고뇌에서 자유로울 자 있을 수 없다. 어이하리 세상 곳곳에 불행이 가득하니 어이하리 그렇다고 죽기도 쉽지 않으니 살아보자 어떻게든 살아 나가자 할 수 있다면 의지를 전적으로 부정해 보라 그리한다면 고통인 세계에서 해탈하리니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차가운 오성이 아니라 의지의 충동이며 그것은 우주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이 의지는 맹목적이며 이 의지에 추종하는 인간의 삶도 결국 삶이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의지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의지는 우리에게 맹목적인 의지로 나타난다. 이러한 맹목적인 삶의 의지가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만든다.

◦모든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생긴다. 그것이 충족되면 욕망은 사라진다. 욕망은 한이 없지만 충족은 잠깐이다. 욕망에 집착하여 그것을 행하려는 의지는 맹목적이다. 이것에 휘둘리는 인간의 삶 역시 맹목적이며 고통스럽다.

◦목적 없는 의지로 인해 생긴 욕구가 모두 충족되는 것은 아니므로 인간은 항상 고통을 겪는다. 신은 이 고통의 세계에 아무런 동정과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인간의 삶 자체는 의지이며, 의지에 의해 욕망이 생겨난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고통이 생기고, 새로운 욕망이 생기지 않을 때는 지루함이 생겨난다. 

◦인간은 삶의 의지가 가장 완전하게 객관화된 존재이며, 무수한 욕망의 덩어리이다. 맹목적 의지로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고통과 번뇌가 끊이지 않는다.

◦눈은 보려는 의지가, 두뇌는 알려는 의지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듯 모든 현상은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단지 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세계와 그 모든 현상은 사실상 의지가 외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의지란 걷지 못하는 사람을 짊어지고 뛰어가는 힘센 맹인과 같다. 그는 목적지도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힘껏 달려 나갈 뿐이다. 이렇듯 의지는 인간 행동의 실질적인 추진력이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고, 그로 인해 삶은 고통일 뿐이다. 

◦인간의 현실적 삶을 중시한다.

◦욕망과 집착으로 인해 현실의 삶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게 된다. 

◦고통을 인간 삶의 본질로 보고 있다.

◦삶은 마치 시계추처럼 삶이 본질적인 구성부분인 고통과 권위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이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모든 고뇌를 지옥으로 추방한 후에는 천국의 권태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   인간은 이러한 욕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삶에서 자기의 욕망과 고통만이 확실하며 나머지는 불명확 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날마다 봉착하는 어려운 일들을 걸머지고 그럭저럭 자기를 꾸려가기 위해 걱정에 싸여 있는 것이 대체로 인간생활의 내용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쉼 없는 의지와 이에 따르는 괴로움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인간은 자신의 개별적 분투에 초월하게 되는 동시에 인류에 대한 보편적 동정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제 그는 그를 괴롭힌 현상 세계의 환상들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고 자신의 의지를 부정할 수 있는 성자다운 몸에 지니게 된다. 

◦삶 자체는 인간이 매우 조심스럽고 걱정스럽게 피해가는 암초와 소용돌이로 가득 찬 바다이다. 물론 인간은 그의 노력과 기술을 가지고 이 바다를 성공적으로 헤쳐 나간다 할지라도 결국 그는 한 발짝씩 점점 최대의 절대적인 피할 수 없는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난파 즉 죽음에 이르는 것임을 알고 있다. 

◦인생이 만족을 열망하는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욕망의 상태인 한 고통은 삶의 본질 즉 덧없는 것으로서 인생의 소극적인 측면이다. 따라서 쾌락이란 단지 고통의 제거 내지 욕망의 완화에 불과한 것이다.

◦목적 없는 의지로 인해 생긴 욕구가 모두 충족되는 것은 아니므로 인간은 항상 고통을 겪는다. 신은 이 고통의 세계에 아무런 동정과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고통과 파괴를 낳는 욕망을 버리는 금욕적 생활(의지의 부정)을 통한 해탈 추구

◦의지의 전적인 부정이 고통을 피하는 길이다.

◦생에 대한 의지를 부정하고 엄격한 금욕적인 삶을 살아간다.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금욕적인 생활자세가 필요하다. 

◦철저하게 욕망을 억제하는 금욕 생활을 강조한다.

◦삶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하여 욕망을 완전히 제거하라.

◦욕망이 강한 사람은 언제나 심한 내면적인 고뇌에 가득차게 되며 미친 듯이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하지만 일단 욕망의 대상이 없어지면 이번에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러므로 욕망을 제거하고 삶에의 의지를 부정하여 참된 평안을 얻는 것이 지혜롭다


❐이성보다는 감정과 의지를, 지식보다는 직관과 체험 중시

◦추상적 사유에서 벗어나 주관적 체험을 강조한다.

◦직관을 통해 의지가 인간의 본질임을 알 수 있다. 

◦이성보다 의지가 삶의 본질적 측면이라고 본다.

◦삶의 역동적이고 깊은 의미를 이성으로 분석할 수 없다.

◦직관과 체험을 중시하였다.

◦이성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 자연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는가?

◦행복을 얻기 위한 주체적 삶을 중시한다.

◦현상계는 지성을 통해 알려질 수 있지만 그 본질이 비합리적 의지인 궁극적 실재의 세계는 지성에 의해 알려질 수 없다. 의지의 비합리적 힘은 본능적인 충동 욕망 욕구의 형태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데 반해 쾌락은 단지 그러한 것들의 빈약하고 일시적인 만족에 불과하며 따라서 소극적인 것이다.

◦인간의 삶은 사물의 본질보다 우선하며 직관이나 상징적 체험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세계의 본질은 삶을 향한 맹목적 의지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금욕함으로써 인간은 해탈할 수 있다.

◦삶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관과 체험이 중요하다네. 그리고 삶의 고통을 피하려면 고통의 원인을 부정하는 금욕적 생활을 해야 하네. 


❐연민과 동정의 윤리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윤리적 대상의 범위를 확대하자

◦동정과 연민이 윤리의 출발점이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였다.

◦도덕성의 핵심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다. 

◦동물에게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인간보다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인간에게는 이 의지가 표상에 의해 많이 덮여 있다 살고자 하는 맹목적인 의지는 식물에게도 나타난다.

◦식물이 빛으로 향하고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모든 존재의 본질은 살고자 하는 맹목적 의지이다. 인간은 이러한 의지가 구체화된 욕망덩어리이다.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새로운 욕망이 다시 고개를 치켜든다. 욕망은 그 본성상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