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그런 교만한 생각을 안고 한 끼니의 식사를 베풀 때마다 이를 받아 들이는 상대방의 자아 그 자체를 휘어잡고 그의 마음속까지도 임의로 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나머지 부자는 상대방의 내면에 일고 있는 분노를 간과하고 만다. 온갖 사슬이 완전히 풀려버려서 갈기갈기 찢겨진 채로 그 어디에서도 자신만의 안정된 상태를 누릴 수 있는 여지라곤 없이 모든 안정과 지속성이 허물어져버렸다는 것, 이런 가운데 특히 시혜자로서 생각할 수 있는 이러저러한 소견이나 의향마저도 모두 배반당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만다. 이제 더 이상 의지하고 지켜내야 할 근본토대가 사라져버린 마당에 그는 가장 깊숙한 내면의 나락과 깊이를 헤아릴 길 없는 심연의 끝자락에 서게 된다. 이 심연 속에서 비쳐나 오는 것은 부라는 하찮은 속물과 이를 수중에 넣으려는 부질없는 생각 그리고 언제라도 분출될 수 있는 오기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결국 부자의 정신은, 본질은 사라진 채 세상의 표면을 훑고 다니는 망상과 같은 것이다.
- 헤겔, 정신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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