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흄의 기출 제시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행복 및 불행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눈물과 비명과 신음 소리는 항상 동정심을 불러 일으켜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성은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의지 활동의 동기도 될 수 없다. 이성은 오직 감정의 노예이고 또 노예여만 한다.
◦이성은 단지 감정의 노예일 뿐이므로 행위를 가져오는 동기로서의 힘으로는 너무나 미약하다. 또한 모든 사람은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흄-경험론=도덕 문제를 인식하는데 있어 이성보다는 감정에 기초
◦덕은 정신적 행위나 방관자에게 시인의 감정을 주는 모든 것이며 악덕은 그 반대이다. 도덕적 구별은 고통이나 쾌락이라는 특정한 감정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씨를 우리가 바라보거나 반성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만족감을 준다면 그런 마음씨는 당연히 유덕하다. 인간의 모든 일들 가운데 불편함을 주는 것은 부덕하다. 그런데 우리들 자신의 성품은 언제나 긍지와 사랑을 불러 일으킨다. 불편함을 주는 사람은 모두 경멸과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이성은 관념과 관념 사이 관념과 사실 사이의 일치 여부로 판단할 수 있으나 그 자신만으로는 어떤 행동도 유발할 수 없고 어떤 의욕도 불러 일으킬 수 없다.
◦도덕적 구별은 고통이나 쾌락이라는 특정한 감정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씨를 우리가 바라보거나 반성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만족감을 준다면 그런 마음씨는 당연히 유덕하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일 뿐이고 또 단지 노예일 뿐이어야만 하며 정념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직무를 탐내어서도 안 된다.
◦도덕성은 판단되기보다는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우리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씨를 우리가 대하거나 반성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만족감을 준다면 그런 마음씨는 당연히 유덕하다.
◦적의 좋은 성품은 우리에게는 해롭지만 우리의 부러움과 존경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어떤 성격을 우리 자신의 이익과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관찰할 경우에만 그 성격은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악하다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느낌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유용한 것이거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성질을 갖는 것이다. 논의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감정은 타인에 대한 배려 즉 이타심인데 이는 인류에게 크게 도움이 되고 유용한 결과를 가져오는 사회적 선을 산출한다
◦귀납 추론은 타당한 추론이 아니기 때문에 연역적으로 정당화할 수도 없고, 귀납적으로 정당화할 경우 순환 논증에 불과하기 때문에 귀납적으로 정당화할 수도 없다. 따라서 귀납 추론을 정당화할 방법이 없다.
◦덕과 부덕은 이성만으로 또는 관념의 비교를 통해서 발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덕과 부덕이 유발하는 인상이나 소감을 통해서만 그 차이를 확정 할 수 있다. 도덕적 청렴과 타락에 관한 우리의 결론은 분명히 지각이다.....그러므로 도덕성은 판단되기 보다 느껴진다는 것이 더 적절하다.
◦모든 사람의 정신은 그 느낌이나 작용에서 유사하며 다른 사람이 어느 정도 느낄 수 없는 감정 때문에 행동하게 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중략) 내가 어떤 정서의 원인을 지각할 때 정신은 그 결과로 옮겨져서 그 결과 때문에 가동된다. 정신은 정념의 원인이나 결과만을 감지할 뿐이다. 우리는 이 원인이나 결과로부터 정념을 추정하며 결과적으로 원인이나 결과가 우리의 공감을 유발한다.
◦오직 이성만으로는 어떤 의지 활동의 동기도 될 수 없다. 그리고 이성은 의지의 방향을 정할 때 결코 정념과 상반될 수 없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다.
◦공감은 아주 강력한 인간 본성의 원리이다. 또한 우리가 확신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가 도덕에 관해 판단할 때와 마찬가지로 외부 대상을 주시할 때에도 공감은 우리의 심미안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 정의 충성 순결 그리고 예절 따위의 경우에 공감은 어떤 다른 원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홀로 작용하는 경우에도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찬동의 소감을 낳기에 충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는다. 아마 우리가 관찰할 수 있겠지만 공감의 작용에 필요한 모든 여건은 대부분 덕에서 발견된다. 덕은 대개 사회 복리를 향한 경향을 갖거나 덕을 소유한 인물의 복리를 향한 경향을 갖는다.
◦선악을 가리는 기준은 쾌와 불쾌의 감정인데, 이를 통해 어떤 행위에 대한 도덕적 시인과 비난이 나타난다. 도덕적 감정이란 이처럼 유용한 행위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감정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서도 유사하게 일어난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다. 행동은 이성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안내될 뿐이다. 혐오 또는 선호가 어떤 대상을 향해 일어나는 것은 고통 또는 쾌락에 대한 예상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유덕함에 대해서는 사랑의 감정을, 악덕에 대해서는 증오감을, 자신의 유덕함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부덕에 대해서는 수치심을 느낀다. 이와 같은 감정을 바탕으로 우리는 도덕적 기준을 공유할 수 있다.
◦덕이 있는 행동은 우리에게 좋은 느낌을 주지만, 덕이 없는 행동은 혐오감을 준다. 그러므로 도덕성은 판단되기보다는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우리에게 편안하고 기분 좋은 시인(是認)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선이고, 우리에게 불편한 부인 (否認)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악이다.
◦유덕함과 부덕함의 구분은 어떤 행동에 대한 만족감과 비난의 소감에 근거한다. 시인(是認)의 대상은 유덕함이 되고, 부인(否認)의 대상은 부덕함이 된다. 이처럼 도덕은 판단되기보다는 느껴지는 것이다.
◦행위가 덕스럽거나 사악한 까닭은 그것을 볼 때 쾌나 불쾌의 감정이 우리 안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악한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를 모든 면에서 검토해 보라. 당신이 거기서 발견할 것은 행위가 악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로지 정념, 동기, 의지, 사고 들뿐이다.
◦도덕의 토대는 인간의 공감 능력이다. 도덕적 가치, 즉 선악은 사회적 시인(是認)과 부인(否認)의 산물이다.
◦덕과 악덕은 그것이 유발하는 인상이나 감정을 통해서만 그 차이가 확정될 수 있다. 덕에서 발생하는 호의적인 인상에서는 시인(是認)의 감정을, 악덕에서 발생하는 거북한 인상에서는 부인(否認)의 감정을 느낀다.
◦도덕 판단은 내적 감정의 결과이다. 어떤 행위가 시인(是認)의 감정을 유발할 때, 우리는 그 행위에 대해 ‘선하다’또는‘옳다’ 고 말한다. 부인(否認)의 감정을 유발할 때, 우리는 그 행위에 대해‘악하다’또는 ‘그르다’ 고 말한다.
◦도덕성의 기초는 공감이며, 공감은 우리가 덕을 평가하는 원천이다. 그러므로 공감을 통해 쾌감을 주는 행위가 선이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이고 노예이어야만 하며, 이성은 감정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일 이외에 감히 다른 임무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나는 언제나 이른바‘나 자신’이라는 것의 심층에 들어가 보면 개별적 지각들, 즉 사랑과 미움, 고통과 쾌감을 경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여기서 이성은 나의 행동과 정념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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